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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23 21:31
[공공관리] 정책 뒤집어 보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374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수 있는, 꺼꾸로 가는(?) 정책 몇가지. 1. 스펙을 무시한 채용 2. 문이과의 구분 백지화 3. 창조하는 경제 4. 세금인상 밖에 없다는 복지정책 5. 기업 중소화 등
 
우리는 세상을 각자의 눈을 통해 본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생물학적 기저와 자신의 경험을 결합해서 사물을 인지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사물을 보편적으로 볼 수 있다. 망막에 맺힌 상을 시신경이 전달하고 두뇌가 해석을 한다.
 
 
그런데,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안구를 비롯한 인체에 고장이 나거나 경험칙의 한계가 발생하는 경우가 그렇다. 조그만 티눈 하나에도 사물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현재의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인간에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상의 빛이 현재의 반으로 줄어드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도 야행성 동물과 비교하면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다. 장기적으로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한 아종만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공룡이 멸종했듯 현재의 전 인류는 화석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조금 비약이 되었지만 위와 같은 정책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스펙을 무시하고 면접만 보고 직원을 채용한다면 피면접자에 대해서 제대로 된 파악이 가능할까? 설사 답변하는 인성은 검증했다하더라고 직책이나 업무에 필요한 스킬과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능력은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인류는 카테코리화를 통해 전문화의 길을 걸어왔다. 한 분야의 지식을 깊이 있게 분업화 해 온 결과, 지금의 문명을 창출한 것이다. 최고 전문가가 우리 문명사를 빚냈다. 간혹 다빈치형 존재가 있었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시대를 앞서간 손꼽을 만한 과학자였을 뿐이다. 생각해 보라. 한 분야 최고 전문성을 포기한 과학자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등학교에서 이과문과의 구분을 하되 선호에 따라 과목을 교차 수강하는 것은 나쁜지 않다. 그러나 이과 문과를 폐지하고 그와 같은 융합논리를 전사회로 확대한다면 우리 사회의 지식 퇴보는 분명한 귀결이다. 적당히 분야를 짬뽕해서 공부한다면 적당한 인재가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과 내에서조차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전문가의 성장경로가 있지 않은가.
 
 
경영, 경제, 행정, 사회 등 유사한 분야에서 조차 통섭의 인재를 찾기가 쉬지 않은 마당에 과학적 재능과 관리적 재능을 동시에 기를 수는 없다. 적성이나 진로의 구분을 완정이 없애 전문화의 길을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뒤처진 민족이 될 뿐이다.
 
셋째, 경제적 발전을 꾀하는 다양한 정책가운데 창조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독창적인 것에 집착하면 험난하고 실패가 충만한 경제로 갈 수 밖에 없다.
 
창조적인 것은 시장에서 잘 수용이 되지 않는다. 스티브잡스가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고 또 그것도 절묘한 타이밍이 있어 가능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과 무르익은 비즈니스모델을 저돌적으로 실현시켰을 뿐이다. 창조적 사회문화를 제도적으로 발전시켜야지 창조하는 경제를 만들겠다고 온통 예산을 쏟아 부으면 남는 것은 껍데기이다.
 
 
넷째, 세금 더 내서 돌려받는 복지증진을 왜 할까 싶다. 서구 복지국가의 모델을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발상은 직무유기다. 기초의료는 좋지만 중병에는 대책없이 죽어나가는 영국식 의료시스템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단기적으로 좋을지 몰라도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 (영국 의료제도에 대한 블로그 단상 참조) 개인의 비용을 지출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활력 넘치는 사회, 자유에 기초한 개인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뒷 바침하는 사회, 구조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발전하는 경제로부터 파이가 커지는 사회가 대안이다. 획일적인 평등과 과도한 책임의 부과는 모두를 짓누른다. 제발 불가능을 극복한 한국경제의 저력을 스스로 비하시키지 말자.
 
 
다섯째, 중소기업화 정책을 이제는 깨버려야 한다. 더 이상 수 많은 정책지원을 통해 창업기업이 중소기업에 머물도록 유인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성장을 단계별로 촉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을 별도로 구분해서 환자이기 때문에 당근 정부의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의 한계를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